엔씨소프트의 해명보다 엔씨소프트를 향한 의혹이 더 쉽게 믿어진다.
이상한 일이다. 2026년 4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클래식의 불법 프로그램 대응과 이용자 제재를 비판한 유튜버 영래기를 허위사실 유포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엔씨는 해당 방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 출시 이후 수백만 개의 불법 프로그램 관련 계정을 제재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영래기의 주장만 판정하면 끝나는 문제일까?
아니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다. 엔씨가 부정한 의혹조차 많은 게이머에게 “엔씨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부터 끌어내는 이유, 바로 그 불신의 시작을 봐야 한다.
답을 찾기 위해 같은 대문자 ‘N’으로 시작하는 한국의 또 다른 게임 회사부터 살펴보자.
넥슨은 어떻게 ‘돈슨’의 오명에서 벗어났나

게이머들은 한때 넥슨을 ‘돈슨’이라고 불렀다.
한국 게임사의 탐욕을 비꼴 때 가장 먼저 입에 오르던 이름이었다.
- 흔히 ‘가챠’라고 알려진 한국 온라인게임에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대중화한 대표 주자
- 돈을 쓰면 더 강해지는, P2W(Pay-to-Win) 기반의 캐시 아이템
- 무너진 밸런싱을 통한 과금 유도
- 편의성을 돈으로 파는 사업 구조
- 그리고, 오래된 캐시카우에 대한 의존
한국 게임 산업이 큰돈을 벌며 사업을 키우는 법을 깨달은 시대였다. 넥슨은 그 성공의 상징이자, 수많은 게이머가 게임사를 믿지 않게 된 불신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넥슨은 적어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만 불리지는 않는다.
물론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바람의나라, 마비노기 같은 오래된 IP에 여전히 기대고 있다. 일부 게이머에게는 지금도 불신의 상징이다. 그 게임들 안에는 넥슨이 남긴 악명 높은 비즈니스 모델이 노병의 전쟁 상흔처럼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러니 넥슨이 완전히 ‘게이머 친화적인’ 회사, 즉 선한 회사가 됐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넥슨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적어도 “우리는 돈만 좇는 회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려 했다.
메시지가 완벽해서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유저가 체감할 만큼 오래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돈슨의 오명’은 서서히 씻겨 나갔다.

그 변화의 가장 선명한 상징이 데이브 더 다이버였다.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 거창하고 플레이타임이 많은 MMORPG도 아니고,
- 고래 유저를 포획하기 위한 PvP 전장도 없고,
- 유저의 뒤처지는 심리적 불안감과 경쟁심을 수익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낮에는 바다를 탐험하고, 밤에는 초밥집을 운영하는, 조금 이상하고 귀여운 게임이었다.
한국 대형 게임사가 만든 게임이 해외에서 “한국식 과금 게임”이 아니라 “그냥 재밌는 게임”으로 받아들여졌다. 비평과 매출에서도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물론, 넥슨의 시도는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야생의 땅: 듀랑고는 높은 자유도와 개척형 오픈월드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과 콘텐츠의 볼륨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고,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워헤이븐 역시 새로운 중세 PvP 액션을 시도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실패였다.
그런데 이런 실패와 자본의 낭비는 넥슨의 이미지에 영원한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왜일까?
게이머들은 그 게임들에서 최소한 “다른 걸 해보려는 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넥슨의 과금과 비즈니스 모델, 사악한 명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 게임의 가챠와 BM이 독하다는 사실도 안다. 괜히 ‘맹독성 과금’이라는 말까지 썼겠는가.
그러므로 엔씨의 실패는 과금이 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과금을 납득시킬 게임적 가치와 신뢰를 만들지 못한 데 있다.
게이머들은 패스, 픽업, 한정 상품, 패키지, 확률, 천장, 효율 계산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어떤 넥슨 게임에는 적지 않은 돈을 쓴다.
그 게임이 먼저 유저를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과금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유저들이 넥슨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데이브 더 다이버의 비즈니스 모델이 순해서만은 아니다. 엔씨가 미움을 받는 이유도 게임에 과금 상품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값싼 가챠도 아닌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중국 게임들을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원신,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의 BM도 가볍지 않다. 다만 그 BM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 음악과 연출, 꾸준한 업데이트와 콘텐츠라는 게임적 가치 위에 올라가 있다.
이 게임들은 결코 자비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지 않다.
캐릭터를 여러 번 뽑고, 전용 무기를 여러 번 뽑고, 한정 픽업 기간을 놓치지 않도록 FOMO로 유저를 압박한다.
원하는 캐릭터를 계속 확보하고 최신 흐름을 따라가는 비용을 두고,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품위 유지비’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이 게임들은 세계 시장에서 거대한 유저층과 매출을 만들었다.
가챠가 착해서일까?
아니다. 유저에게 돈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 음악, 연출, 꾸준한 업데이트와 막대한 콘텐츠를 먼저 보여주었다. 유저들은 이 회사들이 자신의 돈을 가져가더라도, 적어도 그 일부가 다시 자신들을 즐겁게 할 게임으로 돌아온다고 여긴다.
그들의 BM은 게임과 재미 위에 올라타 있다.
엔씨의 게임은 너무 자주 그 반대로 보인다. 게임이 BM을 떠받친다. 그것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유저들은 과금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이 즐기는 게임에는 기꺼이 돈을 쓴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재미보다 매출을 향한 욕망이 먼저 보이는 게임이다. 즐거움을 얻기도 전에 돈부터 내도록 설계된 게임이다.
좋은 게임이 회사의 매출과 주가 상승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저를 즐겁게 하는 게임은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그 기대는 회사의 미래 매출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반대로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재미보다 BM부터 의심받는 회사는 시장에서 미래를 인정받기 어렵다.
넥슨이 보여준 것은 좋은 게임 몇 개만이 아니었다. 기존 캐시카우로 번 돈을 새로운 게임과 새로운 개발사에 다시 투자하는 모습이었다.
게이머들이 엔씨에게 원한 것은 리니지의 수익을 또 다른 리니지식 게임에 재투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리니지식 수익화 문법에 기대지 않고도 재미있는 새 게임으로 시장을 다시 설득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고소장은 신뢰의 다리를 부쉈다

엔씨소프트는 2024년 1,09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듬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과거와 같은 수익성을 회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1년 한때 100만 원을 넘어섰던 주가도 크게 내려왔다. 엔씨 공식 주가 정보에 따르면 2026년 6월 20일 종가는 27만 7천 원이었다.
이 위기는 단순한 커뮤니티 여론이 아니다.
게이머의 불신이 게임의 흥행 가능성과 미래 매출에 대한 시장의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좋은 게임이 주가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가 기대하는 게임을 꾸준히 만드는 회사는 최소한 미래 매출에 대한 기대를 만들 수 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BM부터 의심받는 회사는 그 기대조차 만들기 어렵다.
엔씨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력이 아니다.
돈도 아니다. 충성 팬층이 많은 오래된 IP도 아니다.
부족한 것은 유저를 향한 태도의 증명이다.
“우리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좋은 게임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증명.
“리니지 유저를 다시 결제하게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라, “리니지를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증명.
유튜버를 향한 고소장은 회사를 방어할 수 있다. 당장의 비판에 대응했다는 명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소장은 게임사를 게이머에게 사랑받게 만들지 못한다.
엔씨가 회복해야 할 것은 명예가 아니라 신뢰다.
신뢰는 법정에서 이긴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좋은 게임을 만들 때 돌아온다.
엔씨소프트가 2026년 4월 7일 유튜버 영래기를 고소한 사건은 게이머들에게 이렇게 읽힐 수도 있다: ‘나, 엔씨소프트는 더 이상 재밌는 게임을 만들 수 없다. 난 이제 리니지만 할 수 있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가 리니지라이크로 먹고 사는 것을 방해하지 마라.’
물론 엔씨가 실제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게이머에게 이번 고소는 위와 같은 자포자기 선언처럼 읽힐 수 있다.
넥슨의 사례가 보여주듯, 게이머와 게임사 사이에 신뢰의 다리를 놓는 데는 수많은 세월이 걸린다.
무너뜨리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나는 한 명의 게이머로서 초창기 블레이드 앤 소울처럼 혁신과 재미를 품었던 그 찬란한 엔씨소프트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은 고소장이 아니라, 게이머와 눈높이를 맞춘 좋은 게임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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